
며칠 전 와이프가 말했다. “요즘 반도체 주식 엄청 오른다던데, 우리도 좀 사야 하는 거 아니야?”
틀린 말이 아니었다. 코스피는 지금 역사적인 상승장 한가운데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섹터는 연일 뉴스에 오른다. 주변에서 “한국 주식으로 돈 벌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나는 S&P500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유지하고 있고, 수익률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도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이 불편한 감정의 정체를 생각해 봤다.
나는 이미 한 번 이 판단을 했다
2022년, 나는 내가 좋아하던 홍춘욱 작가의 ‘환율스위칭’ 전략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원달러 환율 수준에 따라 한국과 미국 시장 비중을 조절하는 전략이었다. 논리가 탄탄했고, 데이터도 뒷받침이 됐다.
그래서 Kodex200 인덱스 ETF를 매수했다.(사실 꽤 많이 샀다)
그런데 2025년 초까지, 시장은 이론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한국 주식시장은 오히려 더 하락했고 수년간 지겨운 박스권을 횡보했다.
아무리 합리적인 전략이라도 시장이 그 논리를 따라줄 의무는 없다. 이건 홍춘욱 작가의 전략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시장은 누구의 이론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나는 결단을 내렸다. 겨우 본전 플러스 알파 정도 회복한 시점에 Kodex200 을 전량 매도하고, 세계 1등 시장인 미국 S&P500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했다. 이 방향은 지금도 옳다고 생각한다. S&P500은 그 이후 높은 수익을 기록했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내가 Kodex200을 정리한 직후, 코스피가 폭등장으로 진입했다.

FOMO는 더블로 온다
이 경험이 지금 나를 흔드는 방식은 단순하지 않다.
첫 번째 이유는 단순한 아쉬움이다. “그때 좀 더 기다렸으면 어땠을까.” 두 번째가 더 위험하다. “그때 놓쳤으니 지금이라도 올라타야 하지 않을까.” 반도체 주식에 대한 와이프의 제안이 귀에 들어온 건 이 두 번째 이유 때문이었다.
상승장에는 조용한 함정이 있다. 시장 전체가 오르는 국면에서는 잘못된 판단도 수익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내가 투자 감각이 생겼구나’라고 느낀다.
실력이 아니라 시장의 흐름이 만든 결과인데, 그걸 자신의 능력으로 귀속시킨다. 이 착각이 위험 감수의 문턱을 낮추고, 다음 베팅의 크기를 키운다. 상승장이 길수록 이 착각은 더 깊어진다.
나는 지금 이 착각에 빠지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중이다.
상승장에서 더 크게 잃는 사람들의 공통점
1950년대 후반 미국, 전후 경기 부흥이 만든 장기 상승장 속에서 한 투자자가 62,000달러를 들고 주식 시장에 들어왔다. 6년 반 뒤 그의 계좌에는 297달러 78센트가 남았다. 같은 기간 다우존스는 거의 두 배가 됐다.
그가 특별히 어리석었던 게 아니었다. 그는 공부했고, 전략을 바꿔가며 노력했다. 브로커를 9명 바꿨고, 수십 개의 뉴스레터를 구독했다. 손실이 날 때마다 더 열심히 했다.
그게 문제였다. 절박해질수록 거래가 늘었고, 거래가 늘수록 손실이 깊어졌다. 마진을 쓰다 강제 청산을 당했고, 만회하려다 더 잃었다. 모든 결정이 감정이었다.
이건 70년 전 이야기지만 구조는 지금도 반복된다. 브라질 선물 트레이더를 300일 이상 추적한 연구에서 97%가 손실로 끝났다는 결과가 있다.
대만 개인 트레이더 15년 추적 연구에서는 꾸준히 수익을 낸 비율이 5%에 불과했고, 손실을 낸 트레이더일수록 거래 횟수가 더 많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26년 현재, 서구의 18~34세 젊은 남성의 약 40%가 이용한다는 예측 시장(Kalshi, Polymarket)에서도 수익의 67% 이상이 상위 0.1% 계좌에 집중되고, 일반 사용자의 중간 수익률은 -8%라고 한다.
시대는 달라도, 빠른 수익을 기대하고, 초기 성공에 흥분하고, 손실을 만회하려다 더 잃는 구조는 동일하다.

방향이 맞다면 흔들릴 이유가 없다
코스피가 오르고 있다. 반도체가 뜨겁다. 나는 그걸 옆에서 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왜 S&P500을 선택했는가. 단기 수익률 경쟁에서 이기려고가 아니었다. 수십 년간 박스권에 갇힌 시장 대신,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세계 1등 시장의 복리를 믿기 때문이었다. 그 판단의 근거는 코스피가 오른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Kodex200을 팔고 난 뒤 코스피가 폭등한 것은 아프다. 그 아픔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아픔을 메우려고 지금 반도체 주식에 들어가는 것은 1957년 그 투자자가 손실을 만회하려고 마진을 쓴 것과 구조가 같다. 틀린 이유로 내린 결정은, 맞는 결과가 나와도 다음번엔 더 큰 실수로 돌아온다.
안판다의 생각
와이프의 제안을 듣고 솔직히 잠깐 흔들렸다. 그 흔들림이 불편했던 건, 내가 감정적으로 움직이려 했기 때문이다.
상승장에서 원칙을 지키는 것은 하락장에서 버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하락장에서는 공포가 원칙을 흔들고, 상승장에서는 FOMO가 원칙을 흔든다. 나는 지금 후자를 경험하고 있다.
아무리 합리적인 전략도 시장은 이론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배웠다. 그 교훈은 남의 전략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지금 나의 FOMO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S&P500이 코스피보다 이 시점에 덜 오르고 있다는 건 사실이다. 그 상대적 열세가 불편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세계 1등 시장의 장기 복리를 믿는다는 원칙을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안판다.
참고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