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버블 붕괴 우려가 커지는 지금, 역사는 자본순환이론을 통해 흥미로운 답을 준다. 기술은 성공했지만 그 기술에 돈을 댄 투자자는 대부분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매 세대 마다 이번엔 다르다고 믿는다. 1860년대에 철도는 대륙을 하나로 묶고 모두에게 부를 안겨줄 것이라 믿었다. 1990년대 인터넷은 세상을 바꿀 것이고 이를 놓치는 사람은 바보라고 여겨졌다.
지금은 인공지능이다. 그리고 이번에 걸린 돈의 규모는 과거 어떤 붐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동안 인플레이션으로 돈의 가치가 나아진걸 고려한다고 해도 말이다.
금융사학자 에드워드 챈슬러는 평생 투기적 광풍을 연구해온 인물이다. 그가 팟캐스트 진행자 카이 우와의 인터뷰에서 던진 메시지는 단순하다.
AI라는 기술 자체가 실패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술 혁명들이 그 기술에 자금을 댄 투자자들을 반복적으로 파산시켜왔다는 경고다.
자본순환이론이란 무엇인가?
자본순환이론의 핵심은 간단하다. 어떤 산업이 높은 수익을 내기 시작하면 자본이 몰려들고, 경쟁자들이 뛰어들고, 과도한 설비가 지어지고, 결국 수익성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본은 빠져나가고 남은 승자들만이 경쟁이 정리된 시장에서 다시 수익을 회복한다.
이 순환은 광업, 해운, 은행, 부동산, 기술 산업을 가리지 않고 반복된다. 시장이 비합리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몇 가지 심리적 습성 때문에 이 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 챈슬러의 설명이다.
자본순환이 붕괴로 이어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새로운 기술이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 높은 수익이 자본과 경쟁자를 끌어들인다
- 새로운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가 이뤄진다
- 공급이 수요를 압도한다
- 가격과 수익이 무너진다
- 기업들이 파산하고 투자자들이 손실을 본다
- 인프라는 남고 새로운 사용자들이 그 혜택을 누린다
왜 똑똑한 사람들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가?
챈슬러는 자본순환이 반복되는 이유를 인간의 뿌리 깊은 심리적 습성에서 찾는다. 과신은 관리자와 투자자들이 자신의 기회는 특별하고 예측은 정확하다고 믿게 만든다. 경쟁 무시는 자신이 투자를 늘릴 때 다른 경쟁자들도 똑같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게 만든다.
여기에 최근 추세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믿는 외삽 오류, 그리고 붐에 동참하지 않으면 고객을 잃을 위험이 크지만 뛰어들어 손실을 보는 건 훗날 보너스를 다 받은 이후라는 왜곡된 인센티브까지 겹친다.
주가 급등, 대규모 확장 계획, 잡지 표지를 장식하는 CEO들, 이 모든 신호는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동시에 순환이 정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철도, 텔레콤, 닷컴이 남긴 세 가지 교훈
챈슬러가 반복해서 언급하는 세 가지 역사적 선례가 있다. 이 사례들은 지금의 AI 붐과 불편할 정도로 닮아 있다.
남북전쟁 이후 철도 건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1868년부터 1873년까지 단 5년 사이에 3만 3천 마일 이상의 철로가 놓였다. 기술 자체는 대륙을 연결하고 전국 단위 시장을 만들어낸 진짜 혁신이었다. 하지만 그 돈을 댄 투자자들은 대부분 파산했다.
1873년 공황으로 수백 개의 철도회사가 무너졌고, 살아남은 기업들조차 철도가 창출한 막대한 경제적 가치의 아주 작은 조각만을 수익으로 가져갔다. 사회는 승리했고 주주는 패배했다.
1990년대 후반 통신회사들은 인터넷 시대를 예상하며 5천억 달러 넘는 돈을 광케이블에 쏟아부었다. 예측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 2000년대 초반이 되자 그 케이블의 85%가 놀고 있었고, 대역폭 가격은 90% 폭락했으며, 글로벌크로싱과 월드컴 같은 기업들은 파산했다.
텔레콤 주가지수는 고점에서 92% 추락했고 25년이 지난 지금도 회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겨진 저렴한 대역폭은 넷플릭스,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서비스를 가능하게 했다.
닷컴 버블의 주인공들은 광케이블을 놓은 회사가 아니라 그 인프라를 초기에 활용한 기업들이었다. 그럼에도 이들 역시 화를 피하지 못했다.
2000년 진입 시점에 매출 대비 주가비율(P/S)이 25배를 넘던 닷컴 종목들은 이후 20년간 매출 자체는 견실하게 성장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높은 밸류에이션 때문에 투자 가치의 85%가 사라졌고, 원래 가격을 회복하는 데 18년이 걸렸다.
역사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변혁적 기술은 대체로 약속을 지킨다. 그러나 그 인프라를 지은 투자자들은 대부분 손에 쥔 것이 별로 없었다. 가치는 만든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한 사람, 그리고 잔해가 정리된 뒤 인내심을 가지고 매수한 사람에게 돌아갔다.
지금 AI 붐은 어디쯤 와 있나?
지금 AI에 투입되는 자금 규모는 역사적 기준으로도 이례적이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 미국 대형 기술기업들은 2026년 한 해에만 자본지출 약 7,500억 달러를 지출할 예정이며, 그 대부분이 AI 하드웨어와 데이터센터에 투입된다.
향후 5년간 누적 AI 투자 규모는 약 4조 달러로 추산된다. GDP 대비 비율로 보면 현재 AI 투자는 이미 인터넷 붐의 정점을 넘어섰고, AI 칩의 짧은 수명을 고려하면 철도 광풍의 규모까지 넘어설 가능성도 있다.
챈슬러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구글, 엔비디아, 테슬라로 구성된 매그니피센트7의 현재 투자 붐을 영국 철도 광풍, 1990년대 인터넷 붐과 직접 비교한다.
그의 경고는 AI가 실패한다는 게 아니라, 과잉투자와 과잉경쟁, 그리고 결국의 붕괴라는 패턴이 매우 익숙한 각본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 기술기업들은 왜 투자를 멈추지 못하는 건가?
이들은 무모해서가 아니라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죄수의 딜레마에 갇혀 있기 때문에 투자를 멈추지 못한다. 전체적으로는 모두가 투자를 절제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경쟁사가 앞서나가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기에 개별 기업으로서는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는 이 함정을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 수백억 달러를 잘못 쓰게 되더라도 과소투자의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역시 비슷한 발언을 했다.
챈슬러는 1990년대 후반 유럽 이동통신사들이 3G 주파수 허가권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기 전에 거의 똑같은 말을 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죄수의 딜레마 구조는 과잉투자를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확실하게 만든다.
자산경량 기업에서 자산중량 기업으로
대형 기술기업들이 지난 10여 년간 놀라운 주주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산경량(asset-light) 모델 덕분이었다.
막대한 물리적 자산 없이 지식재산과 네트워크 효과, 소프트웨어만으로 엄청난 이익을 냈다는 뜻이다. AI 군비경쟁은 이 모델을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있다.
매그니피센트7의 매출 대비 자본지출 비율은 2012년 약 4%에서 현재 15% 이상으로 뛰었고, 일부 기업은 21%에서 35%까지 지출하고 있다. 이는 텔레콤 버블 정점의 AT&T보다도 높은 수준이며 유틸리티 기업과 비슷한 수준이다.
물리적 자산은 감가상각이 생기고 지속적 재투자가 필요하며 경쟁사가 복제하기 쉽고 투하자본 대비 수익률도 낮다는 구조적 약점을 지닌다.

AI 사업은 지금 돈을 벌고 있는가?
지출과 수익 사이 격차는 냉정하게 봐야 한다. 베인앤컴퍼니는 현재의 AI 인프라 투자를 정당화하려면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가 연 2조 달러의 신규 매출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챗GPT 출시 3년이 지난 현재 AI 관련 산업 전체 매출은 아직 수백억 달러 수준이다. 즉 앞으로 몇 년 안에 매출이 100배 가까이 늘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에 회계상의 착시도 있다. 여러 대형 기술기업들은 AI 서버의 감가상각 기간을 3년에서 5~6년으로 늘려 잡고 있다.
엔비디아의 교체 주기가 점점 빨라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AI 칩이 가정보다 더 빨리 노후화될 경우 실제 손실은 지금 공시된 수치보다 훨씬 클 수 있다.
개인투자자에게 주는 다섯 가지 시사점
챈슬러의 분석이 몰락을 예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두가 흥분에 휩싸여 있을 때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 가장 많이 투자하는 기업을 경계할 것, 여러 국가와 산업의 수십 년치 데이터는 자본지출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기업이 이후 몇 년간 보수적인 경쟁사보다 실적이 부진했음을 보여준다
- 기술의 성공이 곧 주가의 성공은 아니다, 철도와 인터넷은 세상을 바꿨지만 그 인프라를 지은 회사의 주주는 대부분 돈을 잃었다
- 수요 이야기보다 공급 측면을 지켜볼 것, 얼마나 채택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얼마나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지는 측정 가능하며 그것이 역사적 극단에 이르면 과잉설비와 수익 하락이 뒤따른다
- 숨은 승자는 인프라를 지은 기업이 아닐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인프라 붐의 장기적 수혜자는 그것을 사용한 헬스케어, 금융, 제조업 같은 하류 기업들이었다
- 밸류에이션은 기술혁명 시기에도 예외가 아니다, P/S 25배를 넘던 닷컴 기업들은 이후 20년간 두 자릿수 매출 성장을 이뤘음에도 투자가치 대부분을 잃었다
챈슬러는 이 모든 논의를 더 큰 틀인 부채 초순환(debt supercycle)안에 놓는다. 수십 년간 이어진 금리 하락과 중앙은행의 반복적 개입이 위험선호를 키우고 연쇄적인 자산 버블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금리 상승, 정부부채 확대, 연준 신뢰 약화가 겹치면 다가올 조정은 과거보다 더 클 수도 있다는 경고다.
안판다의 생각
이 글을 읽으며 다시 한번 확인한 건, 기술의 승리와 투자의 승리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다. 철도가 대륙을 연결했다는 사실과 철도회사 주주가 돈을 벌었다는 사실은 별개였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꿨다는 사실과 닷컴 주주가 부자가 됐다는 사실도 별개였다. AI도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특정 종목을 예측하려는 시도가 왜 위험한지 이 글은 다시 한번 잘 보여준다. 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 맞다 해도, 그 승자가 지금 화려하게 자본을 쏟아붓는 회사들일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오히려 역사는 인프라를 지은 기업보다 그걸 저렴하게 활용한 하류 기업들이 더 많은 가치를 가져갔다고 말한다. 개별 종목으로 이 승자를 미리 골라내려는 시도는 결국 예측의 게임이 되고, 예측은 계속 틀릴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논리에도 한계는 있다. 챈슬러 스스로도 AI는 이미 실질적인 매출을 만들어내고 있어 닷컴버블의 가장 투기적인 국면과는 다르다고 인정한다. 자본지출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특정 기업이 반드시 실패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다만 역사가 반복적으로 보여준 패턴, 즉 과신과 경쟁 무시, 죄수의 딜레마식 투자 경쟁이 이번에도 작동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개별 기업의 승패를 맞추려 하지 않는다. 시장 전체를 담는 인덱스에 꾸준히 투자하면, 이번 붐에서 살아남는 기업이든 무너지는 기업이든, 그리고 그 인프라를 활용해 훗날 등장할 하류의 숨은 승자든, 결국 나의 포트폴리오, 시장 인덱스투자 안에 담긴다.
특정 테마가 뜨겁다고 그 방향으로 자산을 몰아넣는 대신, 시장 전체의 장기 성장에 배팅하는 것이 이런 역사적 순환 앞에서 훨씬 덜 위험한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안판다.
안판다의 FAQ
Q1. AI버블 붕괴는 언제 일어나는가?
정확한 시점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자본순환이론은 자본지출이 역사적 극단에 이르면 과잉설비와 수익 하락이 뒤따른다는 패턴만을 보여줄 뿐, 붕괴 시점을 특정하지는 않는다.
Q2. 자본순환이론이란 무엇인가?
자본순환이론은 어떤 산업이 높은 수익을 내면 자본과 경쟁자가 몰려들고, 과잉투자로 수익이 무너진 뒤 자본이 빠져나가는 반복적 패턴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광업, 해운, 통신, 기술 산업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Q3. AI 기술이 성공하면 AI 관련 주식도 오르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철도와 인터넷은 세상을 바꿨지만 그 인프라를 지은 기업의 주주는 대부분 큰 손실을 봤다. 기술의 성공과 개별 주식의 성공은 별개의 문제다.
Q4. AI 투자 붐에서 개인투자자가 조심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자본지출을 가장 공격적으로 늘리는 기업일수록 이후 실적이 부진했던 역사적 데이터가 많다. 또한 밸류에이션이 지나치게 높으면 기업이 실제로 성장해도 투자 손실을 볼 수 있다.
참고자료


